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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파동으로 드러난 우리의 과학문화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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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 조회수:2300 | 2005-11-15 | |
2005년 11월 15일(화) [사이언스 타임즈] 훌륭한 전통 발효 식품이라고 자랑하던 김치가 유해 중금속인 납과 끔찍한 기생충 알이 들어 있는 부끄러운 식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국과의 무역 마찰로까지 번져 버린 이번 사태는 야당 국회의원의 지적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시작됐다. 상업적으로 유통되는 식품의 위생 기준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함과 함께 사회적 논란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태도가 여지없이 드러나 버렸다. 합리적인 과학적 사고방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의 유해물질 ‘허용 기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크게 잘못되었다. 김치에 유해 중금속이 들어 있다는 소식은 곧바로 ‘먹어도 되는가’의 논쟁으로 번져 버린 것이 그 증거다. 유해물질 허용 기준을 마치 먹어도 되는 ‘상한선’으로 여겨서, 허용 기준 이하인 식품은 먹어도 되고, 그보다 많은 식품은 당장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신문과 텔레비전은 ‘그 정도는 먹어도 된다’와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롭다’는 확인할 수 없는 주장으로 가득 채워져 버렸다. 팽팽한 대결 속에서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했다. 유해물질 허용 기준에 대한 진실은 간단하다. 유해물질은 말 그대로 우리 건강에 문제가 되는 물질이다. 그런 물질을 조금 먹으면 괜찮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유해물질에 대한 반응은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미료라고 좋아하는 글루탐산 소듐을 조금만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고, 정신을 잃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연산 새우나 게에 들어 있는 트라이메칠 아민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유해물질은 누구에게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유해물질은 가능하면 먹지 말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먹는 식품이나 환경에서 그런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식품 재료의 생산에서 가공과 유통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비싼 시설과 관리가 필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복잡한 첨단 공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완전한 유토피아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몸에 나쁜 유해물질을 완전히 멀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허용 기준’이다. 다시 말해서, 허용 기준은 ‘먹어도 되는’ 기준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는’ 기준인 셈이다. 피해가 생기더라도 우리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똑같은 유해물질에 대해서 허용 기준이 나라마다 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여유가 있으면 허용기준을 낮게 정할 수 있지만, 배를 채우기도 어렵다면 유해성을 알면서도 먹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김치의 위생 수준에 대한 이번 논란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납 허용 기준도 마련해놓지 않고 생산업체를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러나 김치의 원료인 배추를 비롯한 채소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채소류의 경우에는 납은 물론이고 기생충 알을 비롯한 이물질에 대한 기준이 명백하게 정해져 있다. 과연 우리 생산업체가 사용하는 원료에 대해서 그런 기준을 엄격하게 지켰는지가 확인되어야 하고, 정부는 그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김치의 원료인 채소류 자체가 위생적이 아니었다면 상품으로 유통되는 김치만이 아니라 식당이나 가정에서 담그는 김치까지도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위 정부와 언론에 의해 동원된 전문가들도 문제였다. 실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복잡한 설명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기생충 알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알의 성장 과정까지 복잡하게 설명하면서 성숙되지 않은 기생충 알은 먹어도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미성숙란만 골라서 넣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대장균은 기생충 알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품에 대장균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대장균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장균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비위생적인 과정으로 생산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기생충 알이 문제가 되는 것도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날 것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인 김치를 끓여먹으면 된다는 주장도 황당하다. 문제가 되더라도 구충제를 먹으면 된다는 설명은 양심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섣부르게 불거진 사회적 논란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생산업체들이 고통을 받게 되고, 김치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가 대량으로 유통되는 김치의 생산과 수입 과정을 법에 따라 철저하게 관리했더라면 이런 일은 처음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사회적 논란의 핵심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차분하게 대응했더라도 문제는 훨씬 쉽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정부의 관리 체계가 분산되어 있고, 예산과 인력과 장비가 부족하다는 정부의 변함없는 핑계에 신물이 날 지경이다. 결국 무능한 정부를 믿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어서 정부를 선도해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