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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담보한 실험 “오차는 없다”
첨부파일 조회수:1825 2004-03-04
2004-03-02/한겨레 두통이나 편도선염이 생길 경우 대개 약국에서 두통약을 사 먹거나 병의원에서 처방전을 받은 뒤 항생제를 복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이들 약을 먹지만, 콩알 또는 이보다 약간 큰 알약 하나에는 수많은 동물의 생명과 임상시험 대상이 되어 며칠씩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약은 약학·제약학자뿐만 아니라 독성학자, 약물동력학자, 미생물학자, 화공학자, 생물학자, 유기·생화학자, 기기분석학자, 약리학자, 의학자, 임상의학자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맞물려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만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인간이 언제부터 약을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 4천년전 고대 수메르인의 점토판이나 기원전 1500년대의 이집트 파피루스에 약물과 처방이 기록돼 있다. 또 동양에서도 기원전 250년대 <신농본초경>에 약용식물들이 실려 있다. 탈리도마이드 기형아 사건의 교훈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약은 안전성 보다는 효과가 더 중요하게 취급됐다. 약은 독성을 지녔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져 어느 정도의 부작용은 감수하는 분위기였다. 각 나라들은 개발된 약에 대해 쉽게 판매 허가를 내주었다. 하지만 1950·60년대 이른바 탈리도마이드 기형아 사건이 생기면서 과학자들과 사람들의 생각은 크게 달라졌다. 1957년 독일의 한 제약회사가 개발한 입덧방지약인 탈리도마이드는 그 효과가 좋아 유럽 국가 임신부들에게 날개돋친듯 팔렸다. 그러나 임신 초기 3개월 안에 이 약을 먹은 임신부에서는 유전자 이상을 일으켜 손발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기형아들이 1만명 가량 태어나는 비극적인 약물 재앙이 생긴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 나라들은 약의 효능 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해 매우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새로운 약을 개발하기 위해 각종 과학기술과 수많은 과학자들이 동원됐다. 신약개발에 천문학적인 비용과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요즘에는 연구실에서 합성된 수만가지 약물 가운데 최종 시판할 수 있는 약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가 될까 말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998년 첫 신약이 선을 보인 뒤 지금까지 8종의 약이 신약이란 이름을 얻는데 성공했다. 그 가운데 세계적으로도 까다로운 미국 식품의약품청의 허가를 받은 것은 엘지생명과학이 개발에 성공한 퀴놀론계 항생제인 팩티브 밖에 없다. 팩티브는 지난달 27일 대한민국 신약개발상 대상을 받았다. 팩티브 개발의 주역인 추연성 박사는 팩티브 개발의 역사를 현미경으로 보듯이 재조명해보면 하나의 약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학기술이 관여하는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추 박사는 다른 약과는 달리 항생제는 초기 약효 검색과정이 쉽다고 말한다. 죽이려고 하는 병원성 세균들을 환자의 몸에서 분리해 실험실에서 미생물을 키운 다음 후보 약물을 떨어트려 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후보 신약물질이 된 약물은 전 임상시험이라고도 불리는 동물실험에 들어가게 된다. 이 때부터 정부기관의 개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미 식품의약청 허가 ‘팩티브’유일 우리나라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정한 각종 법규와 기준에 따라 후보 약물을 시험해야 한다. 먼저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일반독성 시험에 들어간다. 한 차례 약물을 투여한 뒤 독성을 살펴보는 단회투여시험과 여러 차례 약물을 집어넣는 반복투여독성시험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생쥐(마우스)나 쥐(래트) 따위와 같은 설치류 1종과 토끼를 제외한 비설치류 동물을 대상으로 약물을 투여한 뒤 몸무게, 사료섭취량, 물섭취량, 혈액검사, 요검사 따위를 한다. 설치류에 대해서는 암컷과 수컷으로 나눠 시험을 해야 한다. 대개 쥐와 개를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성장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의약품과 단백질 의약품은 원숭이를 시험 대상으로 해야 한다. 설치류는 보다 정확한 검증을 위해 특정병원체부재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토끼는 큰 귀를 가져 여기에서 체온을 재기 쉽고 오래 모니터링할 수 있어 약이나 백신의 발열성 시험에 널이 쓰이는 동물이다. 식약청 이수해 박사(수의학)는 “약물에 따라 사용하는 동물이 다르며 동물계통도 선별하고 있다”며 “일반적으로 쥐나 생쥐를 많이 사용하는 것은 다루기 쉽고 실험하기 편하며 이 동물과 관련한 연구 결과가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이 전혀 없으면서 약효가 좋은 용량을 찾아낸다. 아무리 약효가 좋더라도 독성이 심하다면 신약 후보물질로서는 자격이 없다. 제약회사들이 찾는 약물은 독성이 아주 낮으면서도 약효가 뛰어난 종류이다. 이런 일반독성 시험이 끝나면 특수독성 시험단계로 넘어간다. 유전독성, 면역독성, 국소독성, 생식독성, 발암성 따위를 살펴보는 특수독성 시험은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곤란하다.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시험을 하다 그 대상자가 생식에 이상이 생기거나 암에 걸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을 대상으로 약물의 유효성과 독성을 살피는 임상시험과는 별도로 특수독성시험이 동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들 시험에서 약물이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염색체 이상을 일으키는지를 살펴본다. 주사제의 경우 국소독성이 나타나는지, 생물의약품의 경우 항원성이 나타나는지를 알아본다. 동물실험이 끝나면 이어 임상시험에 들어간다. 임상시험은 20~80명 가량의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 1상과 소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부작용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농도 이하에서 적정 투약량을 결정하는 임상 2상, 앞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용량을 많은 환자에게 투여해 적응 대상 질환에 대한 효능과 기존 다른 약물과의 우수성 비교 검토를 하는 임상 3상, 그리고 시판 후 부작용과 약효를 검증하는 임상 4상으로 나뉜다. 신약은 종합 과학의 산물 모든 약들이 반드시 이런 과정을 거치는것은 아니다. 독성이 심한 항암제나 에이즈 치료제는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곧바로 임상 1상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시험을 하기도 한다. 또 정신·심리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약물에 과잉반응을 보여 플래시보(위약)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집단에는 약물이 아닌 위약을 줘 약물투여군과 비교한다. 팩티브 임상 1상에서는 7개의 용량별로 2명의 위약투여자를 포함해 6명을 한 집단으로 해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 흡수 방해 따위와 같은 약물과 음식의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고지방식을 섭취하게 한 뒤 약물을 투여해 그 결과를 살폈다고 한다. 팩티브 임상 1상에서는 100명의 건강한 사람이, 2상에서는 500명의 환자, 3상에서는 5천명의 환자가 각각 동원됐다. 팩티브는 3상 시험에서 미국 애보트의 클래리마이신, 바이엘의 시프로플록사신 등 기존 항생·항균제에 견줘 항균·살균력이 뛰어나고 폐렴, 부비동염, 만성기관지염 악화와 같은 호흡기감염증 치료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 식약청 뿐만 아니라 미국 식품의약품청한테서도 지난해 신약 인정을 받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하나의 약이 태어나는 데는 과학자들의 엄청난 끈기와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이석구 서울삼성병원 임상의학연구센터 임상시험센터장은 “신약은 매우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한 임상시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를 과학·통계학적으로 철저하게 검증한 뒤에 비로소 태어나는 종합 과학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안종주 보건복지전문기자 jjahn@hani.co.kr >